제로에너지 리모델링 가능할까? 기존 건축물의 업그레이드 전략
우리나라 전체 건축물의 약 85%는 이미 준공된 기존 건축물이다. 신축 중심의 제로에너지 정책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 노후 건물에 대해서도 제로에너지 리모델링을 통한 에너지 성능 향상이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과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서는 신축뿐만 아니라 기존 건축물의 에너지 업그레이드가 병행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낡은 건축물도 ‘제로에너지’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까? 이 글에서 기존 건축물의 리모델링 과정에서 제로에너지 수준으로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핵심 기술 요소와 우선순위를 통해 노후 건물도 제로 에너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 살펴보자.
제로에너지 리모델링의 필요성과 가능성 분석
기존 건축물은 대개 단열 성능이 낮고, 기계설비 효율이 떨어지며, 창호나 외피에서 열 손실이 많아 에너지 낭비 구조에 가깝다. 특히 2001년 이전에 건축된 노후 건축물들은 에너지 절약 설계기준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냉난방 에너지 소비량이 신축 대비 2~3배 이상 많은 경우도 빈번하다.
이러한 기존 건축물들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는 데 큰 장애가 되므로, 제로에너지 리모델링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특히 공공시설, 교육기관, 병원, 다세대 주택 등 공공성과 에너지 소비량이 높은 건물일수록 우선적인 리모델링 대상이 되어야 한다.
제로에너지 리모델링은 기술적으로 가능할 뿐 아니라, 실제 국내외에서 성공적인 사례도 다수 존재한다. 예를 들어 서울시 마포구의 한 청소년센터는 기존 건물의 외피를 전면 보강하고,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하며, 기계환기와 LED 조명 시스템을 도입한 결과, 연간 에너지 소비량을 60% 이상 절감하고 ZEB 3등급 인증까지 획득했다.
독일의 에너파사이 하우스 리노베이션 사례에서는, 기존 아파트에 외단열 보강 + 삼중창호 + 열회수 환기 시스템 + 지붕형 태양광 설치를 통해 패시브하우스 수준 이상의 성능을 달성한 바 있다. 이처럼 건축물의 골조는 유지하되 주요 에너지 성능 요소를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은 구조적 안전성을 유지하면서도 경제적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전략이다.
또한 국내는 2025년부터 제로에너지 건축물 의무화 대상이 확대되면서, 리모델링 시에도 일정 규모 이상인 건축물은 에너지 성능 강화 기준을 충족해야 하므로, 이제 리모델링 설계에서도 제로에너지 전략이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제로에너지 리모델링을 위한 핵심 기술 요소와 우선순위
제로에너지 리모델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한된 예산과 기존 구조의 제약 속에서도 최대의 에너지 성능 향상을 실현하는 기술적 조합을 구성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소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고성능 외피 강화
기존 건축물의 외벽, 지붕, 바닥에 외단열재를 추가 시공하고, 기밀 시공을 적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특히 외단열은 구조체 외부에 단열층을 추가하여 열교 발생을 최소화하고 기존 벽체의 단열성을 개선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XPS, EPS, 미네랄울 등 다양한 소재가 사용되며, 지역의 기후와 건물 용도에 따라 최적의 두께와 재료를 선택한다.
고성능 창호 교체
기존 창호는 대부분 단창 혹은 복층 유리이며, 열관류율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이를 3중 로이(Low-E) 코팅 유리 창호로 교체하고, 창틀과 벽체 사이의 기밀성을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 창호 교체는 단열 성능 개선과 동시에 외부 소음 차단, 결로 방지, 시각적 쾌적성 확보 등의 효과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열회수형 환기시스템 도입
기존 건축물은 자연환기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지만, 제로에너지 수준의 쾌적한 공기질과 에너지 절감을 위해서는 반드시 기계환기 시스템이 필요하다. 열회수환기장치는 실내외 공기를 교차 환기하면서도 실내 열에너지를 보존해주는 구조로, 냉난방 부하 절감에 매우 효과적이다. 최근에는 천장형 초슬림형 제품도 출시되어 리모델링 적용이 용이하다.
태양광 설비 및 ESS 설치
옥상이나 외벽에 설치할 수 있는 건물일체형 태양광(BIPV) 또는 소형 태양광 패널을 활용해 재생에너지 자가발전 체계를 갖춘다. 옥상 공간이 협소할 경우에는 고효율 태양광 모듈, 접이식 모듈, 벽체 일체형 태양광 유리 등을 활용할 수 있다. ESS(에너지저장장치)는 부하 분산과 야간 전력 활용을 가능케 해 에너지 자립률을 높여준다.
BEMS 구축 및 에너지 모니터링
제로에너지 리모델링을 완성하려면 건물 에너지관리시스템(BEMS)을 통해 실시간으로 에너지 흐름을 모니터링하고, 최적 운전과 유지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전력 사용량, 발전량, 온습도, CO₂ 농도 등을 실시간 분석하고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써 에너지 절약과 사용자 행동 개선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이처럼 핵심 기술 요소들은 건축·기계·전기 시스템을 통합적으로 고려하며, 건축물의 구조적 한계에 맞춰 유연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제로에너지 리모델링의 비용 구조와 경제성 분석
제로에너지 리모델링은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예산과 수익성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 동반되어야 실제로 추진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제로에너지 리모델링은 단순 보수 공사보다 약 20~40% 이상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 비용은 장기적으로 운영비 절감과 자산가치 상승을 통해 충분히 회수 가능한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
한국에너지공단의 2024년 자료에 따르면, 중소형 공공건물(연면적 1,500㎡)의 제로에너지 리모델링 평균 비용은 약 4억 원 수준이며, 연간 에너지비용 절감 효과는 약 2,000만 원, 감가상각을 포함한 회수 기간은 약 8~10년으로 분석되었다. 특히 보조금 및 융자제도 활용 시 투자 회수 기간은 5년까지 단축 가능하다.
제로에너지 리모델링 비용은 크게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항목 | 비용 비중(평균) |
단열 보강 및 외피 개선 | 30% |
창호 교체 | 15% |
설비 시스템(환기, HVAC) | 20% |
재생에너지(태양광+ESS) | 25% |
BEMS 및 제어 시스템 | 10% |
또한, 리모델링 시 건축물 용적률 인센티브, 세금 감면, 취득세 환급, 건폐율 완화 등 다양한 행정적 혜택이 주어질 수 있으며, 특히 공공부문 또는 사회적 배려계층 대상 건축물의 경우 국비 보조율이 50~80%까지 가능하다.
한편 민간 부문의 경우, 임대주택이나 상업시설은 제로에너지 성능을 입증함으로써 고급화, 임대료 상승, 공실률 감소 등의 효과를 실현할 수 있어, 경제적으로도 매우 높은 투자가치가 있다.
제로에너지 리모델링 활성화를 위한 정책·제도 개선 방안
제로에너지 리모델링이 본격 확산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기반, 인센티브 체계, 전문 인력 확보, 기술 표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첫째, 리모델링 전용 ZEB 인증 체계 신설이 필요하다. 현재 ZEB 인증 기준은 신축 건물 위주로 설계되어 있어, 리모델링 건물에 적용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구조 보존, 일조 조건 제한, 태양광 설치 한계 등으로 인해 신축과 동일 기준을 적용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정부는 ‘ZEB 리노베이션 등급제’ 또는 ‘단계적 인증 시스템’을 도입하여 기술 적용 수준에 따라 1~5단계로 평가하고, 각 단계별 인센티브를 차등 적용하는 방식이 요구된다.
둘째, 중소 건물주 대상 기술 컨설팅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중소형 건물주는 제로에너지 설계, 시공, 비용 분석에 대한 이해가 낮고, 전문 인력이나 설계사가 부족하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나 지자체는 무료 컨설팅 프로그램, 표준 설계도서 제공, 샘플 건축물 공유 등을 통해 기술 확산을 촉진할 수 있다.
셋째, 제로에너지 리모델링 인프라 업체 육성 정책도 중요하다. 단열 시공, 고기밀 창호 설치, ESS 연동, BEMS 운영 등은 모두 전문성과 실적이 중요한 분야이므로, 인증을 받은 전문 기업을 육성하고 등록제로 관리하여 건축주와 사용자에게 신뢰도 높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넷째, 리모델링 금융 상품 다양화 및 세제 감면 확대가 필요하다. 제로에너지 리모델링 전용 금융 상품, 탄소 저감형 건축물에 대한 지방세 감면, 리모델링 시 용적률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등 민간 투자 유인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정책적 유연성 확보가 필수다.
마지막으로, 사용자 참여형 프로그램 및 성능 공개 시스템을 통해 리모델링 성과를 사회 전체에 공유하는 문화 조성이 필요하다. 리모델링 사례집 발간, 성능 비교 포털 운영, 시민 체험관 운영 등을 통해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고 제로에너지 리모델링의 파급력을 강화할 수 있다.